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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지. 그건 지금으로부터 36만…아니, 1만 4천 년 전이었던가. 뭐, 됐어. 내게 있어서는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이지만, 너희들에게 있어서는 아마도 내일 일어날 일이야.”


서문

정말로 바로 어제 일어난 일만 같은데, 벌써 거의 반 년이나 된 일이다. 혹은 3개월 반 가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지난 9월 24일의 기사를 쓰던 시점에서 이미,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병원에 가본 결과, 흔한 반도의 게임하는 남자사람에게 발병하기 쉬운 몇 가지 질병과 증세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으로(구체적으로는 거북목, 척추측만, 초기 디스크, 그 외 정의되지 않은 통증성증후군이다) 검사결과가 나왔고, 어쩔 수 없이 아키에이지를 포함한 게임 일체를 봉인하고 휴식 기간을 가진다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12월 19일. 이 사이의 3개월간, 어떻게든 아키에이지를 플레이하고 기사를 써 보려고 했으나 실로 손 쓸 도리가 없이 시간만 흘러간 것이다.

이후의 일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반드시 아키에이지에 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하고 있던 전반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손을 놓아버린 것이 원인이 되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시간은 쏘아진 화살과도 같이 흘러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정말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길다면 길게 느껴졌고, 짧다면 짧게 느껴진 이 3개월간, 무리를 피하고 휴식을 최우선과제로 삼아 하루하루를 보낸 결과, 급성에 가까웠던 격한 증세는 가라앉고, 대신 만성적인 질긴 증세들만이 남았다. 웬만큼 무리를 하지 않는 한, 증세에 시달릴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 나는, 약간의 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야 했지만, 아키에이지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순수하게 휴양만으로 3개월, 플레이를 하지 못한 기간까지 합치면 약 반 년에 이르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은 변화가 아키에이지에도 찾아들어 있었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아키에이지의 변혁은 그 동안 감정적이 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아무런 소식도 듣지 않고, 심지어 홈페이지도 찾지 않고 있던 나를 의도치 않은 뉴비로 만들어 버렸다. 굳이 말하자면 중고 뉴비.

심각할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던 나는, 계획을 조금 수정해서 이를 글로 남기기로 했다.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소재가 될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정말로 뉴비인 분들과, 혹은 나처럼 중고 뉴비가 되어버린 분들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기로 했다.

어떠한 관점에서는 뻔해 빠진 것들, 어떠한 관점에서는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것들, 어떠한 관점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아마 다루어지리라 생각한다. 이것도 지나가면 다 즐거움이겠지. 지금은 지금을 보내는 나를 있는 그대로 써 보리라.

서문을 접으며, 나의 척추에 건강을 가져다준 모 회사의 인체공학 의자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1. 계획에 없었던 접속

사실 이번 복귀는 날짜나 시기를 정해놓고 한 것이 아니다.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겠지만, 모 동호회의 스카이프 대화가 계기로 작용했다. 그곳에서 내가 워낙 아키에이지를 하자고 영업을 많이 해놓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아키에이지 델피나드 서버 하는 인간이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었는지, '요즘 아키에이지 시작했는데' 하며 보고를 해오는 것이 아닌가. '어, 음...' 하면서 사실은 아픈 것 때문에 아키에이지도 못 하고 있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델피나드 서버로 시작했는데' 라고. 이건 복귀할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사실 저 포함해서 4명이 한꺼번에'란다.

기회는 찬스다. 나는 이 대화로 아키에이지를 다시 플레이할 결심을 했고, 클라이언트를 업데이트했다! (...설치용량이 무자비하게도 33GB를 넘어서더라) 이것은 마치 오픈 베타 때 심박수를 올리며 기다리던 그 느낌이었다. 50레벨짜리 캐릭터가 대기 타고 있다는 점이 좀 다르지만, 어쨌든 이 세계에 오는 것은 실로 오랜만. 내가 사랑한 그 세계는 아직도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를 기다렸을까. 마침내 클라이언트의 업데이트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 얼마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소리란 말인가! 새삼 기대에 부풀어 나는 익숙한 로그인 화면을 거쳐, 드디어 신과 영웅들이 남긴 세계로 들어왔...는데...생각해보니 집을 정리 안 하고 그대로 휴지기에 들어갔었다!? 악, 내 가구들이!! 예전에도 한 번 겪어본 이 낭패감은 내가 도무지 학습을 할 줄 모르는 녀석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반복되는 역사였다...

응, 괜찮아. 아직 700골드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애써 태연한 척(도대체 누구를 위한 태연함이란 말인가) 철거 통지서를 정리하고 난 나는 곧 세컨드 임팩트가 터질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이, 이 닝겐들! 내가 그렇게나 동대륙을 하라고 했는데 모조리 서대륙 갔어!! 그렇게나 엘프의 슴가가 마음에 들더냐아아아!! ...실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상황. 그러나 나는 애써 초연한 척 말했다. "뭐, 일단 서대륙어는 찍어놨으니까..."

말이 통한다고 해서 조금만 방심하면 데미지가 뜨는 관계가 기초된다는 명백한 진리에 변함은 없지만, 일단 엘프의 슴가를 사랑한 저 4인방으로부터 다굴 맞는 사태는 피하고자(나는 엄청난 발컨이라 전투가 벌어지면 그야말로 무능하다) 호의적인 대답을 선택했다. 다행히도 이 대답은 좋게 받아들여진 듯했다. 언젠가 이 닝겐들을 모조리 동대륙으로 끌어오리라.

자, 그럼 일단 복귀는 했고...무엇부터 시작한다? 제목만 써놓고 파이프를 피우며 고민하는 모 배긴스 영감과도 같은 자문(自問)을 하며, 막막한 심정을 그저 웃어 보았다. 아키에이지는 손대려면 손댈 만한 콘텐츠가 참 많다. 특히 비세쳬프와는 다르게 이르셰인은 생산 숙련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 거나 손대도 될 법한 상황. (이번 복귀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비세쳬프는 버려졌다. 아디오스. 지못미. 그동안 즐거웠어!)

일단 먼저 복귀인사를 하기로 했다. "님들 안녕? 내가 돌아와쪄염>ㅅ<" ...이라고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일단 꾸욱 참고 정상적인 인사를 했다. "돌아왔습니다, 델피나드!!" ...그간 밴드의 라이브 영상을 너무 본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내가보이냐 님이라든가 Dreamkeeper 님 등, 기존 유저분들이 나를 아직 기억하고 계셨다. 안 그랬으면 진짜 쪽 팔았겠지.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고인이 일어나셨다!!!!!" ...아직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2. 우선은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보자

(※ 여기서부터는 다소 과장된 표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키에이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생산력 있는 터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호전적인 전투민족을 위한 콘텐츠도 아키에이지에는 많이 존재하지만, 결국 그쪽으로만 가는 건 소비성 인생이라고나 할까.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모처럼 이렇게 복잡다단한 생산 체계를 갖춘 작품이니만큼 이쪽을 맛보지 않는 건...음, 말하자면 가쓰오부시가 없는 오코노미야끼를 먹는 것과 비견할 수 있을 듯하다. (...예제가 되려 이해하기 어려운 거 같은 느낌도 든다)

어쨌든 일단 집을 다시 짓자. 그러면 제작대를 쓸 수 있으니까...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요즘 대세인 쪽의 생산을 할 수 있어. 익숙해지는 건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돼.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집을 지으려니, 뭐니 이거! 인플루엔...아니,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해!! 예전보다 재료가 더 비싸진 거 아냐!? 집 짓다가 파산하게 생겼어!! 일단 제일 비싼 석재라도 중간생산을 해서 조금이나마 돈을 아껴보자, 라며 나는 암석을 대거 사들여 망치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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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돈이 나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다급해진 나는 비세쳬프 계정에 얼마간의 돈이 있을 거라는 걸 떠올려내고, 250골드를 착취하여 그나마 약간 안심을 하면서 망치질을 계속했다. 그러나 내가 짓는 집은 세련된 누이아 2층 주택. 무려 15개의 석재 꾸러미가 들어가는, 소규모 자금을 겨우 융통하는 유저에게는 건설 부담이 좀 있는 레벨의 주택이다. 게다가 중간생산을 하려니 노동력의 압박도 상당했다. 아키라이프로 예전에 비해 2배의 노동력을 얻고는 있지만, 그래도 양이 양인지라.

자, 여기서 사모님! 지갑에 여윳돈 좀 가지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아키에이지 세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최신 모드, 황홀한 여명은 어떠신지요! 무려 1,000의 노동력을, 단돈 600원에!! 한 번에 100개를 구매하시는 분께는 최저단가 무려 450원에 제공해 드립니다!! 누구나 안심하고 흡입할 수 있는 안전한 물약! 놀라운 테크놀로지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이렇게까지 심하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도류 님은 대충 이런 식으로 나에게 약을 팔기 시작했고, 그것은 정말로 솔직히 말해 솔깃한 방법이었다. 여명이 태어난 자리에 도달했던 날,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결제화면이 열렸고, 나는 5만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는 여명 100개를 질렀다. ...지포스 사려고 모으던 돈이!! 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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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뭐랄까...이걸 하나씩 쓸 때마다 모 게임에서 스○마를 하는 녀석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 정말로 약 빠는 느낌이다. 7개의 스쿠○...아니, 황홀한 여명을 소비하여, 나는 유사히 집을 단숨에 지어내는 데 성공했으나...대체 뭐란 말인가, 이 배덕감은...손 대선 안 될 걸 손 대버린 듯한 이 죄악감은... 집은 얻었으나, 뭔가 마음 속의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이 마음을, 그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세일러문 브금이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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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인 거 같져? 무려 FLAC으로 모조리 들고 있다긔!!↑↑


#3. 연금을 시작해본다

Dreamkeeper 님을 통해 연금이 요즘 가장 핫한 생산이라는 정보를 얻은 나는, 집을 짓자마자 바로 연금 숙련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버린 몸, 마음껏 버리리라는 마음으로 황홀한 여명을 써가면서. 그리하야 연금 숙련도가 단 420이었던 이르셰인은 복귀한지 12시간도 안 된 바로 지금 이 순간, 연금 10,000을 찍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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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벌채 같은 건 이르셰인이 재료 담당 캐릭터였기 때문에 올린 것으로...결단코 제 취향대로 찍은 게 아닙니다. 네.

자, 이제 초록이를 생산하면 되는 건가 하고 생산 탭을 뒤지기 시작한 나는 아연실색해졌다. 없어!? 없다고!? 내가 지금 뭔가 아이템 이름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분명히 강한 초록이가 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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뭠미!?

이건 또 무슨 일인가!! 게임 밸런스부터가 확 바뀌었단 소리잖아!! 당혹 그 자체다. 초록이를 비롯하여, 아란제브의 몽상, 누이의 눈물, 심지어는 만드느라 죽는 줄 알았던 새벽 별 꼬리까지 아득한 과거의 저편으로 사라져 간 것이다...이것이 늅늅으로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인가!

...응, 일단 받아들이고.

그래서, 이제 뭘 하지?


To be continued...




(추가) 소소한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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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
  • 스카이그린 @트레파세스 | 13레벨 | 검의 춤꾼 | 엘프
    중간에 울분을 잠시 같이 느끼며 좋아요 눌러요~ ㅡ.ㅡ;
    금발 슴가짱 언니 좋아하는 놈들때문에 저도 서대로 왔다죠. (그리고 지들은 다 접은게 함정 ㄱ- xxxxxxxxxx )
    2014-03-03 13:35
  • 뚜쉬뚜쉬 @루키우스 | 51레벨 | 흑마술사 | 엘프
    순간 엘 샤다이의 병맛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2014-03-03 13:37
  • Natique @진 | 52레벨 | 추적자 | 하리하란
    그런 장비로 복귀를 하다니 정말 괜찮은가?
    문제 없어
    (약 10분후 황금평원) 퍽퍽  툭탁  퍽 윽...
    2014-03-03 14:35
  • 고순 @멜리사라 | 51레벨 | 명예기사 | 페레
    석공 올리시는게 어떨지;; 저승돌 만들어서 파세요 초반에;
    2014-03-03 14:39
  • 이르셰인 @델피나드 | 50레벨 | 마법사 | 하리하란 Natique @진
    악ㅋㅋㅋㅋㅋ 다음 글에서 써먹으려고 한 소재를 까발기시다니요!!
    2014-03-03 14:39
  • Natique @진 | 52레벨 | 추적자 | 하리하란 이르셰인 @델피나드
    앜 이런 죄송 ㅋㅋ 그래도 내용이 찰져서 잼있네요ㅋ
    2014-03-03 14:52
  • 백기사김코드 @에안나 | 52레벨 | 마법 근위관 | 하리하란
    으어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4-03-03 14:55
  • 딸기요팡 @루키우스 | 50레벨 | 첩자 | 하리하란
    이거 뭐얔ㅋㅋㅋ 꽤 재밌네요 글 잘쓰시는듯 ㅋㅋㅋㅋㅋ
    2014-03-03 15:17
  • 내가얀데레한다는데니가왜 @델피나드 | 15레벨 | 요술쟁이 | 누이안
    복귀 축하해여 *ㅁ* (모자이크의 1人)
    2014-03-03 16:51
  • 에우렐 @델피나드 | 51레벨 | 자객 | 엘프
    복귀 축하축하! 만성ㅠ
    2014-03-03 18:53
  • Windofksana @루키우스 | 51레벨 | 선창자 | 누이안
    가슴을 사랑하는 분들이시군요.
    2014-03-03 20:51
  • 손무 @진 | 50레벨 | 마법사 | 누이안
    누가 뭘 탐했다ㄱ...?
    2014-03-04 03:14
  • 명석몽 @아란제브 | 50레벨 | 전쟁 인도자 | 페레
    복귀는 축하드려요! 이제 델피나드는 서버이전 이벤트 대상예정이므로 경매장 1군 서버들로 이전하겠죠.
    2014-03-04 12:00
  • 꽃믿음 @진 | 50레벨 | 사제 | 누이안
    저도 ... 요즘 게임시간을 줄였더니
    허리가 안아프더라능.......
    오래 한 자세로 앉아있어서 허리에 무리가 오긴하나봐요 .. ㅠ
    2014-03-04 14:34
  • 이도류 @델피나드 | 53레벨 | 자객 | 하리하란
    훗 마약의길로 오신걸 환영합니다 후후훗
    2014-03-05 05:00
  • 푸른소금상회금순이 @타양 | 50레벨 | 추적자 | 하리하란
    글이 무지 긴거같은데  전혀 길다는 느낌이 없이 너무 잼있게 읽었네요. 글 솜씨 짱임
    2014-03-05 13:08
  • 골리 @페란 | 54레벨 | 포식자 | 하리하란
    2014-03-0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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