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문지기와 검은 사람 | 조각난 연대기

2014-02-26 09:01 | 조회 17092




좁고 둥근 홀이었다. 천장은 높고 기둥은 희었다. 별자리가 새겨진 바닥에는 낙엽이 뒹굴었다.

벽을 바른 타일에는 영원이 새겨져 있었다. 작은 별이 자라 큰 별을 짓고, 큰 별이 모여 태양을 이루고, 태양이 늘어서 우주가 되었다. 원 하나가 세상이지만 가장 큰 원도 부분을 닮아 있었다. 그 자체로 완전한 무늬이며 결코 낡지 않는.

 

홀은 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타나는 현관처럼 생겼다. 문지기 홀이라고 부르면 되리라. 정면에는 문이, 그리고 맞은편에도 문이 있었다. 두 문은 마주본 채 열려 있었다. 그러나 문 너머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한쪽 문 밖에는 황야가 보였다. 먼지구름이 일어나 지평선 너머가 흐렸지만 홀 안까지는 들어오지 못했다.

 

다른 문 밖은 놀랄 만큼 푸르렀다. 잘 자란 나무와 야생화, 싱싱한 잎이 우거졌다. 그러나 제멋대로 자라 미로가 되어버린 숲은 아니었다. 어떤 것도 지나치지 않고, 도저히 저절로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조화로웠다. 그러니 정원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아마도.

 

홀 중앙에는 돌로 만든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소녀가 앉아 있었다.

무릎까지 오는 하얀 원피스를 입었고, 발은 맨발이었다. 어깨에는 금빛 머리가 굽이쳤다.

앳되고 싱그럽지만 어딘가 모르게 관능적인 매력마저 느껴졌다.

 

소녀는 멍한 표정이었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은 물론 눈동자에도 초점이 없었다.

 

소녀의 의자 뒤쪽으로, 바닥과 벽이 닿는 부분의 작은 균열에서 검은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소리 없이 날리다가 이윽고 조그맣게 뭉쳐졌다. 그러더니 손바닥만 한 사람 모양으로 변했다. , , 입이 없어서 쿠키로 만든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먼지 사람이 소녀의 무릎으로 뛰어올랐다. 소녀의 시선이 맥없이 떨어져 먼지 사람을 향했다.

 

“안녕, 아가씨. 심심해 보이네.

 

소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먼지 사람은 소녀의 무릎에 앉았다.

 

“난 여기서 오랫동안 살아왔어. 예전에 여기 있던 애도 알지. 그 애는 고지식하고 재미가 없었어. 그런데 넌 다를 것 같아.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 줄까?

 

소녀의 눈동자가 조금 움직였다. 먼지 사람은 웃음소리를 냈다. 입이 없는데도.

 

“옛날에 어떤 사람이 멋진 정원을 만들었어. 나무도 심고, 꽃도 심었지. 그는 자기 정원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었어. 언제까지나 자기가 만든 그대로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정원 밖에서 떠돌던 까만 아이들을 들여보내지 않으려 했어.

 

먼지 사람은 팔짱을 끼었다.

 

“까만 아이들은 정원 안이 궁금했어. 굉장히 아름다울 것 같았거든. 그래서 어느 날 몰래 안으로 들어갔지. 깜깜한 밤에 말이야. 하지만 그 사람은 깜깜한 밤에도 까만 아이들을 볼 수가 있었어. 그는 꺼지지 않는 불을 갖고 있었거든.

 

“까만 아이들을 발견한 그 사람은 화가 나서 구덩이를 파고 그들을 묻어버렸어. 까만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애걸했지만 그는 자비심이 없었지. 까만 아이들은 구덩이 속에 갇힌 채로 며칠, 몇 년, 몇 백 년, 몇 천 년 동안 빌었어. 살려주세요, 나가게 해 주세요, 하고.

 

먼지 사람이 일어섰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외침을 듣지 않았어. 왜냐하면, 정원을 만든 사람은 죽어버렸거든.

 

소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죽었어?

 

먼지 사람은 재빨리 말을 정정했다.

 

“아니, 아니,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아니라면 멀리 떠났을 거야. 어쨌든 그는 다시는 정원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이제 까만 아이들은 영원히 갇혀 있게 된 거야. 너무 슬픈 일이었지.

 

소녀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지나가다가 구해줄지도 모르지.

 

“그래. 맞았어. 누구든지 지나가기만 했다면 구해줬을 거야. 고작 정원을 한 번 본 것뿐인데 그렇게 오래 갇혀 있는 것은 부당하니까. 그들은 충분히 벌을 받았어. 아니, 지나치게 많이 받았어.

 

먼지 사람은 소녀의 어깨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귓가에 섰다.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기괴해졌다.

 

너라면 우리를 구해 주겠지?

 

먼지 사람은 다시 먼지로 변해 소녀의 귓속으로 빨려들 듯 들어갔다. 잠시 후 소녀의 눈이 또렷해지더니 분노가 나타났다. 두 손으로 팔걸이를 꽉 움켜쥔 소녀는 흉측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침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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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 에브니 @델피나드 | 50레벨 | 신비의 연주자 | 엘프
    오키드나?? 혹시 오픈때 동영상의 거기인가요??
    2014-02-26 11:26
  • 에우렐 @델피나드 | 51레벨 | 첩자 | 엘프
    오키드나인가?
    2014-02-26 13:23
  • 고객님당황하셨어요 @오키드나 | 2레벨 | 마법의 초심자 | 하리하란
    왜...이제왔삽!!
    2014-02-26 13:43
  • 플라비오 @멜리사라 | 53레벨 | 사제 | 누이안
    스토리는 진짜 좋은데..
    왜 이런걸 게임안에서 못살릴까..
    2014-02-26 20:38
  • 뚜쉬뚜쉬 @루키우스 | 51레벨 | 흑마술사 | 엘프
    하.....하앍!!!! 소름!!
    2014-02-27 09:24
  • 미호 @타양 | 50레벨 | 숲의 방랑자 | 엘프
    오오옹....좋아요...
    2014-02-27 10:54
  • 라라사 @이녹 | 52레벨 | 애도의 악사 | 하리하란
    나나짜응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14-02-27 16:14
  • 명석몽 @아란제브 | 50레벨 | 전쟁 인도자 | 페레
    오키드나라니!!!
    2014-02-28 08:36
  • 지브로 @루키우스 | 50레벨 | 포식자 | 누이안
    오키드나는 왜 거기에 앉아있었고. 오키드나가 기괴해진건 그 검은사람이 조종해서 그런 것인가.
    2014-05-12 02:43
  • 아글리아14 @크라켄 | 4레벨 | 사랑의 초심자 | 누이안
    그 고지식하던 애가 키프로사...? 그리고 다음이 오키드나고.. 그런 건가?
    2014-08-16 13:21
  • Civigoulgima @레비아탄 | 13레벨 | 암살자 | 엘프
    오매
    2014-08-16 13:21
  • 클라리체 @곤 | 21레벨 | 은둔자 | 엘프
    고지식한 건 아마도 이전의 페어리 여왕..?
    2016-12-04 18:22
  • 일격에주님곁으로 @누이 | 계승자 5레벨 | 추적자 | 하리하란 아글리아14 @크라켄
    고지식하다는 애는 페어리여왕입니다. 그 후 오키드나가 문지기가 되고 오키드나가 악마와 계약을 해 정원에서 탈출하자 키프로사가 문지기가 됩니다
    2017-08-02 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