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의 기록
붉은 용 '불을 움켜쥔 오스페로스' 조각난 연대기
2014-06-03 09:23 조회 20841
미사곤이 사라진 후 알이 부화하지 않음을 알게 된 용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많은 용들이 스스로 어머니가 되기를 선택해 알을 낳았다. 혹시 하나라도 부화하지 않을까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은 하나도 깨어나지 않았다. 반면 쇠약한 시기에 어머니가 된 용들은 상당수가 죽었고, 나머지는 깊은 잠에 빠졌다. 용족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용들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얼음 가문의 수장인 ‘얼음심장의 페사닉스’가 더 이상 알을 낳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대로는 잠든 어머니 용들을 지킬 전사들조차 남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남은 용들은 에너지를 아껴 오래 살아남기 위해 허물을 벗어 몸집을 줄였다. 그리고 어머니들이 잠든 거울 왕국의 지하를 지키며 은둔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많은 용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목숨을 바쳐 알을 낳은 용들에 비해 자신들이 비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부화하지 않는 알들을 보는 것 또한 고통이었다.
용들은 그 후 이프나와 나차쉬가 사라지고, 인간과 엘프와 페레와 드워프들이 나타나 왕국을 세우고, 번성하고, 싸우고, 스러져 가는 동안에도 고요히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형벌은 그들 일부에게 광기를 가져다주었다.
오늘날 붉은 용으로 알려진 ‘불을 움켜쥔 오스페로스’는 본래 불의 가문의 자손이었다. 내전의 주체였던 불의 가문은 대부분 미실론에 남았지만, 오스페로스의 어머니 ‘대지를 태우는 메사니아’는 몇 명의 형제들과 함께 과감히 히르노르로 건너왔다. 이후 형제들이 모두 죽자 메사니아는 핏줄을 잃은 슬픔과 외로움 때문에 어머니가 되기를 선택했다. 메사니아는 오스페로스를 낳은 후 잠들었다.
아버지가 되어 줄 불의 가문이 없었으므로 얼음 가문 출신의 빼어난 용사인 ‘가장 흰 스테르반’이 오스페로스의 아버지가 되어 주었다.
스테르반은 히르노르에 불의 가문 출신이 한 명도 없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겼다. 자신이 키우면 오스페로스는 순혈이 아니게 되어버리기에 그는 의도적으로 오스페로스를 방치했다.
성인이 된 오스페로스는 불의 가문의 자질을 고스란히 유지했지만 자신을 외면한 아버지 스테르반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성질이 급하고 사나워졌다. 그 결과 오스페로스는 전쟁에서 누온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이후 미사곤의 죽음으로 용들은 은둔을 택했지만 오스페로스는 몇 번이나 뛰쳐나가 파괴를 자행했다. 그는 이렇게 하면 수명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또한 그는 이곳에서 자신만이 불의 가문이기에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만일 자신이 알을 낳고 만에 하나 부화에 성공한다 해도 다른 불의 가문이 없으니 결국 자신과 같은 운명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잠들었던 어머니 메사니아가 깨어났다.
메사니아는 처음으로 만난 자식에게 미실론에서 불의 가문이 얼마나 강대했는지, 그 강대함이 어떻게 오만을 불렀고 오만은 어떤 결과를 자초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오스페로스는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겸손을 배우기보다는 미실론으로 돌아가 자신의 아이, 불의 가문의 후손을 남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품게 되었다.
미실론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미사곤처럼 차원을 연결하는 힘을 갖는 방법뿐이었다. 미사곤은 용족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지만, 최초에는 분명히 용이었다. 그렇다면 오스페로스도 미사곤처럼 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오스페로스는 최대한 에너지를 끌어 모아 자신의 체구를 불렸다. 그러나 용족의 몸을 이루는 에너지는 미실론에서 온 것이기에 히르노르에서는 충분한 양을 얻기 어려웠다. 오스페로스는 곧 죽은 용의 시체에 손을 대게 되었고, 그들의 에너지를 차례로 흡수했다. 흡수할 시체가 더 이상 없자 다음 길은 하나뿐이었다.
메사니아는 미실론 이야기를 해준 것을 후회하며 오스페로스를 저지하려다가 그만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비록 어머니를 죽이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오스페로스는 어머니의 에너지마저 흡수했다. 오스페로스는 강대해졌지만 동시에 슬픔과 울분으로 제 정신이 아니게 되었다.
오스페로스가 미쳐가는 것을 안 용족들은 오스페로스를 추방할지 죽일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때 아버지 스테르반이 나서서 오스페로스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버지인 그가 그렇게 말하자 결국 모두 찬성하게 되었다.
스테르반은 오스페로스를 뼈의 땅으로 불렀다. 오스페로스는 이제 아버지 스테르반이 왜 자신을 외면해야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페로스는 스테르반을 미워했다. 얼음 가문답게 냉정한 스테르반은 그간 오스페로스가 어떤 짓을 저질러도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오스페로스가 보기에는 그런 모습조차 사랑이 없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래서 오스페로스는 부름에 응했다. 복수를 위해서.
스테르반 또한 자신이어야만 오스페로스가 부름에 응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비록 스테르반이 오스페로스를 방치하긴 했지만, 스테르반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스페로스를 사랑해 왔다. 그랬다 보니 아버지로서 끼친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오스페로스는 겉보기에 완전히 불의 가문으로 보였지만 몸속에는 얼음의 힘이 일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얼음은 서로 합쳐지려는 속성이 있었다.
스테르반은 메사니아의 운명에 책임감을 느꼈기에 자신의 선택이 만든 죄과인 자식의 목숨을 스스로 거둬 용족에게 책임을 지고자 했다. 스테르반은 거대한 얼음인 자신의 힘으로 오스페로스의 몸에서 얼음의 속성을 끌어당겼다. 오스페로스의 몸 곳곳이 갈라지고 터져나갔다.
스테르반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아버지였으면서 자신이 우연히 남긴 한 점 사랑을 이용해 자식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 스스로를 용서하기 힘들었기에 스테르반은 오스페로스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자 공격을 멈추고 자식을 품에 안으려 했다.
그러나 어머니 메사니아의 에너지마저 흡수한 오스페로스는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오스페로스는 몸 깊은 곳에서 불의 힘을 끌어내어 얼음을 녹였고, 마침내 스테르반의 몸속에 있는 얼음의 힘마저 녹여버렸다. 엄청난 고통이 스테르반을 덮쳐왔다.
마지막 순간이었건만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화해의 말도 증오의 말도 없었다. 그들 사이에 남은 건 원초적 비명뿐이었다. 마침내 쓰러진 스테르반은 몸이 절반은 녹아 있었다. 오스페로스는 스테르반을 굽어보며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그런데 잠시 후, 오스페로스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자신이 왜 기쁜지, 왜 싸우고 있었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스테르반이 누구인지도,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스테르반이 오스페로스의 몸 속에서 얼음을 끌어낼 때 오스페로스의 기억이 담겨 있던 에너지가 얼어붙어 부서졌기에, 오스페로스는 대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남은 기억의 파편만이 맥락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그를 괴롭게 할 뿐이다. 오스페로스는 스테르반을 죽인 후 용들에게 돌아가 그들을 모두 죽이려던 계획도 잊어버렸다. 미사곤이 되어 미실론으로 돌아가려던 목표도 잊었다.
이름을 잃은 ‘붉은 용’은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혀 뭐든 파괴하고자 한다. 붉은 용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들을 죽이지만,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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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렐
@델피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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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
엘프
그니까 붉은 용이 오스페로스네2014-06-0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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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쉬뚜쉬
@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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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술사
엘프
가가 그냥 미쳐날뛰는 거였구만! ㄲㄲ...2014-06-0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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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몽
@아란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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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사냥꾼
페레
부모의 정을 느끼며 자랐어야 했어.2014-06-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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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가족장
@진
11레벨
주술도적
누이안
불쌍하다...2014-06-0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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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
@크라켄
52레벨
암흑 유랑가
하리하란
왜 이 글은 전민희님의 글이라 생각되지 않는걸까요...?2014-08-22 03:40
아키에이지 기획팀의 누군가가 짠 스토리를, 전민희님이 검수만 했다... 정도의 느낌이군요.
뭐라 해야하지... 전민희 작가님 특유의 냄새가 옅은 것 같다 해야하나.. -
블랑
@노아르타
계승자 7레벨
검은 기사
페레
이게 게임이 아니고 소설이나 영화같은 끝맺음이 있는 이야기였다면2017-07-25 00:10
주인공(?)의 도움을 받은 용족들이 자신들을 희생하여 오스페로스를 미사곤으로 각성시키고
파괴신의 재림으로 위기에 처한 히르노르를 지원할 미실론 용족들을 데려오는 스토리가 진행 가능했을텐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