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축제의 기원

벚꽃 축제의 기원

제목 : 벚꽃 축제의 기원
분류 :
작자 : 미상

내용

#1

매년 봄이 되면 하리하라 대륙을 비롯하여 누이아 대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벚꽃을 보기 위해 노래의 땅을 찾는다.
마리아노플의 대문호 안토니우스 트리스테는 비파 항구에서 열리는 벚꽃 축제를 "일생에 꼭 한번 경험해야 할 연인의 유희"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벚꽃 축제는 연인에게 몹시 낭만적인 유희이다.
서로의 사랑을 더욱 깊게 하려는 연인과, 연인이 되고자 하는 남녀의 발걸음이 노래의 땅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비파 항구 벚꽃 축제의 정확한 기원을 밝혀보고자 한다.

#2

벚꽃 축제가 처음 시작한 시기에 대한 논란이 매우 많다.
현재 역사 학계에서는 두 가지 학설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 되고 있는 추세이다.
하나는 파비트라 대여제의 명령에 따라 벚꽃 축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리하랄라야 제국의 군주이자, 서방 이슈바라의 국왕이었던 나디르가 축제를 열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전자는 여제가 자신의 실질적인 남편인 이스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열었던 장례식에서 축제가 시작되는 학설이며,
후자는 서방 이슈바라의 국왕 나디르가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축제를 열었다는 학설이다.

#3

많은 학자들이 비파 항구 벚꽃 축제의 기원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태이다.
필자 역시 얼마 전 남방 이슈바라에서 발견된 [여제 수행록]이란 책을 보지 못했다면, 이 분분한 의견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리하랄라야 제국의 군주이자, 남방 이슈바라의 국왕이었던 알카미는 과거 파비트라 대여제를 경호하던 수행원이었다.
그는 파비트라 대여제가 베난 황제와 결혼한 후, 하슬라를 빠져나와 2년의 방랑 끝에 탑의 도시에 있는 이스밀에게 찾아갈 때에도 그녀를 경호했었다.
남방 이슈바라의 왕궁 장서각에서 발견된 [여제 수행록]은 바로 알카미 국왕이 파비트라 대여제를 경호하던 때를 기록한 회고록이다.

#4

[여제 수행록]에 따르면 베난 황제가 있는 하슬라를 떠나 2년 동안의 긴 방랑 끝에 이스밀을 찾아간 파비트라 대여제는 탑의 도시에 가기 전에 노래의 땅에 들렸다고 한다.
그녀는 비파 항구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바라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긴 방랑의 시간과 남편 이스밀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을 흘리며, 파비트라 대여제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밀과 함께 이 아름다운 풍경을 꼭 다시 보고 싶어!"

#5

파비트라 대여제는 남편인 이스밀과 재회한 후, 반란을 일으켜 베난 황제를 폐위시켰다.
그녀는 하리하랄라야 제국의 황제가 됐지만, 남편 이스밀과는 정식으로 부부 사이임을 공표할 수 없었다.
하리하랄라야 제국의 황제는 반드시 아버지가 황족이어야 한다는 황실의 법규가 있었다.
아샤마 황태자의 친부는 이스밀이었으나 공식적으론 베난 황제였기 때문에 친부가 황족이 아닌 이스밀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태자의 자리를 지킬 수가 없었다.
파비트라 대여제와 이스밀은 아샤마 황태자를 위해 서로가 부부임을 공표하지 않았다.

#6

공식적으로 부부 사이가 아닌 파비트라 대여제와 이스밀이 자주 만나게 되자 황궁의 사람들이 둘 사이를 의심하게 됐다.
둘은 아샤마 황태자를 위해 결국 이별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스밀은 비파 항구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노래의 땅으로 떠나게 됐다.
손쉽게 반란을 진압한 이스밀은 결국 비파 항구의 총독이 되었다.
약 7년 동안 파비트라 대여제와 이스밀은 각각 하슬라와 비파 항구를 떠나지 못한 채 서신으로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7

[여제 수행록]에 따르면, 어느 날 비파 항구에서 온 전령의 편지를 받은 파비트라 대여제가 몹시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녀의 심복인 알카미가 그 까닭을 묻자 파비트라 대여제는 이스밀이 비파 항구에 아름답게 핀 벚꽃을 바라보며 여제와 함께 그 풍경을 보고 싶다는 내용을 적었다는 것이었다.
파비트라 대여제는 자신이 과거 비파 항구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떠올렸던 생각을 이스밀 역시 똑같이 한 것이라며 기뻐했다.
여제는 재빨리 이스밀에게 답장을 썼다.

"우리가 다시 만나서 함께 벚꽃을 보게 되는 날 다시 모두가 인정하는 진정한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8

7년의 세월이 흐른 후, 황권이 안정되자 파비트라 대여제는 옛 황제의 전통을 살려 제국의 대도시를 순방하기 시작했다.
이스밀이 있는 비파 항구는 세 번째 순방지였다.
파비트라 대여제가 비파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한참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난 무렵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바라보며 파비트라 대여제는 이스밀에게 말했다.

“우리도 이제 슬슬 결혼이란 걸 해보면 어떨까?”

#9

파비트라 대여제가 이스밀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낸 다음 날, 절정에 치달았던 벚꽃이 하나둘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나뭇가지를 벗어나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에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비파 항구의 호족인 바르토크가 파비트라 대여제에게 이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며, 절벽 위에 있는 정자 망루로 그녀를 안내했다.
여제는 이스밀과 함께 바르토크의 안내를 받아 절벽 위의 정자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반역자의 화살이 파비트라 대여제를 향해 날아왔다.

#10

파비트라 대여제는 그녀를 감싸 안은 이스밀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축축했다. 가슴 언저리가 피범벅인 상태였다.
자신을 감싸 안았던 이스밀의 등을 꿰뚫은 화살의 반짝이는 촉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피에 젖은 몸으로 이스밀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했다.

"여기서 계속 기다릴 테니, 가라"

#11

파비트라 대여제는 반란을 진압한 후, 매년 봄이 되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 속에서 이스밀의 장례식을 치렀다.
이 성대한 장례식은 파비트라 대여제가 죽고 서방 이슈바라가 건국된 뒤에도 계속되었다.
서방 이슈바라를 건국한 나디르는 이스밀의 심복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탓에 그 역시도 매년 봄이 되면 벚꽃을 바라보며 친구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나디르가 죽은 뒤에도 봄의 장례식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벚꽃을 바라보며 목숨을 바쳐 파비트라 대여제를 지킨 이스밀의 고결한 사랑을 칭송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활짝 핀 벚꽃은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 됐다.남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고백하며 말했다.

"이스밀처럼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12

필자는 알카미가 남긴 [여제 수행록]의 기록을 통해 벚꽃 축제의 정확한 기원을 밝혀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또한, 이 연구를 통해 그동안 많은 논란이 되어 왔던 시인 [손을 놓을 수 없네]가 파비트라 대여제가 작품이 맞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파비트라 대여제가 남긴 시를 감상하며, 봄의 벚꽃 축제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다들 가슴에 새기길 바란다.

#13

봄을 노래하는
그대의 숨결에
열여덟 숫처녀처럼
수줍은 내 마음은
활짝 핀
꽃봉오리 마냥 부풀어 올랐네

노래하는 항구를 가득 메운
하얀 꽃송이는
다시 만난
그댈 향한 내 마음일까

그대 가슴에 피어난
붉은 꽃송이는
달콤한 거짓말처럼
이별을 속삭이지만
손을 놓을 수 없네

소용돌이치는
바람에 휘날린 꽃잎은
오늘이 지나면
앙상한 나뭇가지와 잎사귀만 남긴 채
다시 올 봄을 기다리라 노래하지만
손을 놓을 수 없네

다시 봄이 와도
다시 꽃이 펴도
손을 놓을 수 없네

소용돌이치는 꽃잎 속에서
하염없이 흐느끼며
차가워진 그대 가슴에
따사로운 숨결을 불어넣으려
손을 놓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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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자 : 블랑 @노아르타 | 계승자 7레벨 | 검은 기사 | 페레 (2017-08-26)
우수편집자 : 블랑54 @이니스 | 계승자 36레벨 | 정령술사 | 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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