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소금 상회의 탄생

푸른 소금 상회의 탄생

제목 : 푸른 소금 상회의 탄생
분류 :
작자 : 미상

내용

#1

현재 세상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규모의 집단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백이면 백 전부 푸른 소금 상회라고 말할 것이다.
푸른 소금 상회가 탄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이다.
하리하랄라야 제국이 붕괴한 후, 4개의 이슈바라 왕국이 세상에 등장한 뒤 백 년가량 평화가 지속하던 무렵이었다.
이니스테르의 남작 가문의 막내로 태어난 리베크는 가문의 상속과 인연이 없었던 탓에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게 가능했다.스무 살의 젊은 청년이었던 리베크는 성인이 된 후, 세상을 떠도는 여행자의 삶을 선택했다.

#2

리베크가 죽기 전에 직접 남긴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무려 7년 동안이나 여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리베크는 5년 동안 하리하라 대륙을 여행한 뒤, 길 잃은 바다를 건너 누이아 대륙을 2년 동안 계속 여행했다.그가 2년 만에 누이아 대륙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그위오니드 숲어서 엘프가 벌이는 연등 축제에 참여하면서였다고 한다.
리베크는 그위오니드 숲에서의 등불 축제를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3

엘프는 본래 매우 배타적인 종족이다.
그들은 그위오니드 숲에 칩거한 채 좀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엘프는 다른 종족이 자신의 보금자리인 그위오니드 숲에 찾아오는 것 역시 반기지 않았다.훗날 변하긴 했지만 리베크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엘프가 아닌 다른 종족이 그위오니드 숲에 발을 밟을 수 있는 때는 오직 연등 축제가 열리는 2월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매년 2월이 되면 많은 상인과 여행자들이 그위오니드 숲을 찾게 됐다고 한다.

#4

리베크는 등불 축제에 참여하는 상인과 여행자 행렬 사이에 껴서 그위오니드 숲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이니스테르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엘프가 사는 곳에 방문한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스물일곱 살의 젊은 리베크의 흥분된 마음은 어쩌면 그에게 미묘한 고양감을 안겨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고양감이 리베크로 하여금 엘리스틴이란 여성 엘프를 사랑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회고록에 따르면 엘리스틴은 매우 도도한 엘프였다.

#5

엘리스틴은 리베크의 구애를 냉정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평범한 누이안이었으면 아마도 그녀의 차가운 거절에 상처를 받고 더는 구애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리베크는 평범한 누이안이 아니었다.7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방랑 생활을 해왔던 리베크는 끈기 하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끈질긴 사람이었다.
축제가 열리는 한 달 동안 리베크는 내내 엘리스틴을 쫓아다니며 계속 구애했고, 계속 차였다고 한다.

#6

엘리스틴은 리베크가 집요하게 자신을 쫓아다니자 단순한 거절이 아닌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젊은 누이안 리베크, 나는 당신 같은 평범한 누이안을 조금도 사랑할 수 없어요. 적어도 내 마음을 움직이려면 세상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런 힘을 얻고자 야망을 품고 단 일 분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존재여야 해요.아무런 야망과 목표도 없이 당신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떠돌이에게는 티끌만큼의 호감도 가지 않는답니다. 만약, 내 마음을 얻고 싶다면 먼저 내가 말한 누이안이 돼보세요."

#7

리베크는 엘리스틴에게 자신이 그녀가 말한 것과 같은 사람이 돼서 다시 그위오니드 숲에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그녀에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엘리스틴을 잊지 않을 수 있게 아주 작고 볼품 없는 것이라도 좋으니 선물을 하나 달라고 부탁했다.
리베크의 구애를 계속해서 거절했던 엘리스틴이 무슨 생각으로 그가 요구한 선물을 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리베크에게 넓적한 도자기 그릇을 선물로 안겨줬다고 한다.
리베크는 엘리스틴이 자신의 마음을 반쯤 받아들인 거였을 거라고 회고록에 남겼으나, 필자가 보기엔 리베크가 계속 쫓아다니는 게 귀찮아서 그렇게 한게 아닌가 싶다.

#8

리베크는 회고록에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위오니드 호수 주변에 작은 불꽃을 품은 연등 수천 개가 하늘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엘프들은 왕의 복수를 염원하며 연등을 날렸지만, 나는 엘리스틴과의 사랑을 염원하며 연등을 날렸다.
어두운 하늘을 가득 채운 연등을 바라보며, 나는 엘리스틴에게 말했다."당신이 원하는 누이안이 돼서 다시 돌아오겠소. 그러니, 그때동안 당신을 떠올리며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 물건을 하나만 주시오."
엘리스틴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커다란 나무가 그려진 그릇을 내게 건넸다.
"내가 매일 사용하던 그릇이에요"자신이 소중하게 사용하던 물건을 선물한다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녀 역시 내게 아주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9

이니스테르로 다시 돌아온 리베크는 아버지인 남작에게 돈을 투자받아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곤 엘리스틴이 선물로 준 그릇에 바닷물을 가득 채운 뒤, 바닷물이 모두 증발해서 마르기 전에 사업을 크게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7년 동안 세상을 여행하기만 했던 떠돌이가 쉽게 성공할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엘리스틴의 그릇에 담긴 물이 반쯤 증발했을 때까지도 리베크의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실패를 거듭하며 아버지에게 투자받은 돈을 까먹기만 할 뿐이었다.

#10

그릇에 담긴 물이 거의 다 증발해 가자 리베크는 바닷물을 다시 떠와서 그릇에 부었다.
시간이 흘러도 사업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그릇에 담긴 바닷물은 계속해서 증발해 갔다.
바닷물이 줄어들 때마다 리베크는 계속해서 다른 물통에 바닷물을 떠와서 그릇에 부었다.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릇에 담긴 바닷물이 모두 증발해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됐다.
리베크는 바닷물이 말라붙어 하얀 가루만이 남아버린 그릇을 바라보며 절규했다.
그는 그릇을 부둥켜안은 채 엉엉 울었다.

#11

눈물을 흘리던 중에, 리베크는 그릇에 담긴 하얀 가루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살짝 맛을 봤다고 한다.
혀끝을 찌릿찌릿하게 만드는 짠맛을 통해 리베크는 그릇에 담긴 가루가 소금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리베크는 바닷물이 말라서 소금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자기 그릇에 바닷물을 담근 후 햇볕에 말려보았다. 바닷물이 말랐으나 이전만큼의 소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리베크는 곰곰이 자신이 했던 일을 떠올리다가 바닷물이 어느 정도 마를 때마다 계속해서 부어줬던 것을 생각해냈다.
바닷물을 몇 차례 충원하면서 햇볕에 말리자 제대로 된 소금이 만들어졌다.

#12

리베크는 상단을 만들어 자신이 만든 천일염을 판매해 큰 부를 쌓았다.
그는 엘리스틴이 말했던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 자신이 만든 천일염을 하리하라 대륙과 누이아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에 판매했다.
리베크가 큰 부를 쌓아가자 각 국가의 권력자들이 그가 판매하는 소금에 과중한 세금을 부과했다. 리베크는 각 국가의 권력자들이 마음대로 자신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없을 만큼의 힘을 얻기 위해 자신과 거래하던 상인들을 모아 거대한 상인 조합을 조직했다.
그렇게 탄생한 상인 조합이 바로 '푸른 소금 상회'였다.

#13

리베크가 그위오니드 숲을 떠난지 10년 만에 푸른 소금 상회에 누이아 대륙과 하리하라 대륙의 경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베크는 이쯤이면 엘리스틴이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것이라고 여기며, 2월이 되자 그위오니드 숲을 찾아갔다.
10년 전에 엘리스틴과 헤어질 때처럼 작은 불꽃을 품은 수천 개의 연등이 그위오니드 호수 주변에서 천천히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자신을 따르는 상인들과 함께 그위오니드 숲을 찾아온 리베크는 상인들에게 연등을 날리며 소원을 빌어보라고 말했다.
여행자에 불과했던 자신이 지금처럼 부자가 된 것도 어찌 보면 연등에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라면서.

#14

다시 찾은 그위오니드 숲에 엘리스틴은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키리오스를 없앨 방법을 찾는 수행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리베크는 그위오니드 숲의 등불 축제가 끝날 때까지 엘리스틴을 기다렸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15

결혼하지 않은 채 늙어서 죽어가던 리베크는 푸른 소금 상회에서 일하던 상인 중 가장 유능한 자를 뽑아서 자신의 이름을 이어가게 하고 전 재산을 물려줬다.
그리고 그에게 리베크라는 이름을 이어받았으니,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매년 2월이 되면 그위오니드 숲의 연등 축제에 참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어쩌면 리베크는, 언젠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엘리스틴에게 자신이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을 그렇게 해서라도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푸른 소금 상회의 우두머리를 '리베크'라고 불렀으며, 매년 2월이 되면 리베크와 함께 그위오니드 숲에 찾아가 소원을 빌며 등불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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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자 : 쫄복 @키리오스 | 55레벨 | 기적술사 | 엘프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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