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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의 안개가 내려앉은 하리하라 대륙의 카어 노르드 부둣가,



갈매기와 물고기가 신경전을 벌이는 소리를 배경삼아 두 남자가 앉아있다.



옆에 가지런히 놓인 빈 어망을 보면 아마도 아침부터 낚시중인 모양이다.







"이런!"







물고기가 풍덩! 하는 소리가 적막을 흔든다.







"놓쳤군... 자넨 좀 어때?"







작은 체구의 낚시꾼이 물고기를 놓친 낚싯대를 끌어당기며 침묵을 깼다.



무릇 두 사람의 낚시꾼이 모이면 지루함을 달래려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법이다.



물론, 소리는 아주 조그맣게... 물고기는 수면 근처의 소음엔 매우 예민하니까.







"빌어먹을 놈의 물고기들이 나날이 머리가 좋아진단말이지..."





"다행히 자네도 허탕이구만."





"다행히는 뭔가... 다행히는... 이런 못된 심보같으니."







배불뚝이 낚시꾼이 혀를 찬다. 허물없는 대화로 보아 둘은 지기(知己)인 듯하다.







"친구지만 묘한 경쟁의식이 생긴단 말이야. 자네랑 낚시를 하고 있으면."





"내기인가? 아직도 유치하다니까... 그때 그 청새치 잊어버렸나?



자네가 방해만 안 했어도 그 놈은 지금쯤 내 집에 어탁으로 남았을텐데..."





"아, 그건 참 미안하이."







그렇게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







그러나 초여름의 새벽은 애매하다.







"그건 그렇고, 일선에서 물러난 자네가, 이곳까지 나를 부른 게



낚시를 하자는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 실은 그 얘기를 하려고..."







침묵을 지키기엔 그다지 춥지 않고, 지나치게 수다떨기엔 그다지 덥지 않다.



작은 체구의 낚시꾼은 안주용 어육(魚肉)을 뜯어서 건내며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요새 붉은 군대라고 들어봤나?"













"붉은 군대? 혹시 그 예전에 피묻은 손(주1)이란 정신나간 집단?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애들을 잡아다 암살자로 만든다던가...



그런데 그놈들은 틀림없이 수년 전에 전멸하지 않았나, 그게 왜?'







배불뚝이 낚시꾼은 어육을 받아 한 입 베어물며 대답했다.



피묻은 손, 서쪽 대륙에서 온 그들로선 기본상식 같은 것이다.







"아니, 그 피묻은 손은 아닐세."







이야기를 꺼낸 남자는 떡밥을 다시 붙여 낚싯대를 던진다.







"허? 그렇다면 뭘 말하려는 건가. 설마 도적단의 이름 같은 건 아니겠지?"







무슨무슨 손가락 같은 식으로 멋들어진 이름을 짓는 것이 도적단의 특징이다.



물론 그럴만큼 이 시대의 도적들은 그다지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만 말이다.







"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건가... 이니스테르의 제일가는 정보꾼이라고.



고작 도적떼 이름 같은 걸로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하겠나?"





"하하...농담일세. 그래서 뭐라고? 붉은 군대라고 했나."







작은 체구의 낚시꾼이 허리를 뒤로 기대며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래, 자유도 통상조약(주2)이후 동/서 대륙간 교류가 활발해졌지...



그래서 이니스테르의 내 가게에도 고향 출신 선원들이 많이 찾아오거든.



그런데 그들 중 일부에게서 아주 황당한 얘기를 들었을 뿐이네."





"황당한? 크라켄 눈알까지 뽑아본 자네에게도 그런 게 있나?"







잠시 침묵이 이어진 후, 정보꾼이라는 체구 작은 사내는 말을 잇는다.







"그... 붉은 군대라는 무리가 우리 고향인 솔즈리드 반도에서 활보하고 다니는 것 같네.



신흥 종교조직인지 아니면 어디 떠돌이 몰락 기사단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일세."





"그런 놈들이야 유일조 대첩(주3) 이후엔 엄청나게 흔한 것 아닌가?"





"유일조 대첩이라... 오래간만에 듣는 이름이군."







오래된 단어, 유일조 대첩이란 말이 그 둘의 낡은 추억을 되살린다.



추억이라기보단 피비린내가 지워져 미화된 악몽(惡夢)에 가깝겠지만...







"떠돌이 기사들 집단같은 것이라면 그렇겠지, 허나 그들의 두목에 대한 소문이 문제일세."





"두목이? 뭔가 이름난 전사라도 되는 모양이지?"





"...내가 하는 말, 놀라지 말고 잘 듣게.



아마 자네도 잘 아는 이야기가 하나 떠오를 테니..."





"흠...?"







말에 추임새라도 넣어주듯, 갈매기가 부산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붉은 군대의 두목이란 자의 투구 너머엔, '얼굴'이 없다더군."













"뭐...???"













갑자기 배불뚝이 남자의 표정이 험상궂어진다.



유일조에 대해 이야기할때완 완전히 다른 표정이다.







"그래, 그게 사실이라면, '그'가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는거야."





"...불가능해. 그럴 리가 없어. 아니, 있을 수 없어... 자네도 그때 봤잖아?"







배불뚝이의 중얼거림에서는 명백하게 '공포' 라는 한 가지 감정이 묻어난다.



어느새 두 사람의 어깨가 살짝 떨리고 있음을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한다.



이른 새벽의 스산함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그것은 좀 더 실체가 있는 떨림이였다.







"나도 믿기 힘들지만 이런 소문이 근거없이 나돌 리가 없지 않나...



'그' 에 대해 잊고 지낸 지 무려 10년이 넘었네, 이제 와서 돌아오는 것도 이상해.



나도 농담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있네."







그의 친구는 고개를 푹 떨구고 손을 떤다.



배불뚝이는 식은땀이 잔뜩 흐르는 얼굴로 마치 따지듯 외쳤다.













"미쳤어! 우리 모두는 그때 분명히 세상 끝 불바다에 그를 던져놓고 왔다고!!!!



일번 기사단 3번대 전원이 그걸 보고 왔다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소리야!!!



그 자리에 우리들만 있던 것도 아니었잖아! 무려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켜봤어!













----------------------분명히 '그'는 죽었어!!!"













이미 물고기는 모두 도망갔을 정도로 시끄러운 외침이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옴과 함께 파도가 얕게 부스러진다.



그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새벽의 적막을 완전히 걷어낸다.







"....내일 당장, 예전 친구들과 함께 솔즈리드로 가겠네.



어느 질 나쁜 놈들이 퍼뜨린 소문일테니 잡아다 입단속을 엄히 시켜야지.



절대로 사실이 아니겠지만 만에 하나 모르니 안식의 땅 영주(주4)께 연락을 해두겠네."







말을 꺼낸 쪽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지었던



그 어떤 누이안도 지금의 이 남자만큼 그렇게 믿고싶은 기색이 역력하진 않을 것이다.







"그 말을 할 줄 알았네, 나도 선원들을 데리고 함께 가도록 하지."





"친구,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럴 리가 없을 걸세... 아마도..."







불확실한 목소리로 한숨쉬듯 말한 작은 체구의 사내는 낚싯대를 잡아챈다.



성급하게 올려진 낚싯대엔 지금 그들이 느끼는 불안처럼, 아무 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피를 머금은 그 갑옷은 마치 혼돈에서 메아리치듯 쓰러진 육신을 이끌었고,



불타버린 전신은 이계에서 소용돌이친다. 가시 투성이 방패는 세상을 잊었고,



사방으로 휘날리는 증오의 칼날 꽃과 같으니, 그 정체모를 집념만은 영원하리라.'





[대기사 팔라티오 저(著), 유일조 대첩 기록시편 中]































[PROLOGUE CLOSED]













(주1) 피묻은 손 : 이건 다들 아니까 넘김.

http://archeage.xlgames.com/wikis/%ED%94%BC%EB%AC%BB%EC%9D%80%20%EC%86%90



(주2) 자유도 통상 조약 : 동서 대첩 이후 '올바른 질서' 시대에 들어서게 된 계기를 만든 조약,
동/서 대륙의 주요 지도자들이 합의하여 자유도 근처의 무역을 상호 인정 및 보호한다.
소설 속 세계관에서 '카게' 를 필두로 하는 4대 해적맹주가 '올바른 질서' 와 전쟁중인 이유이기도 함.



(주3) 유일조 대첩 : 유일조와 유일조를 따르는 세력과 기존 세력간의 큰 충돌,
단일 전쟁으로는 단시간에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으로 유명하다.
현 시대의 질서가 성립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 전쟁에 대해서는 다른 편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룸.



(주4) 안식의 땅 영주 : 소설 세계관 속 안식의 땅 영주는 일번 기사단을 이끌던 '흑지룡' 이다.





네임 및 모티브 차용 :



카게(타양섭 Kage)

유일조(타양섭 총통하나조)

팔라티오(타양섭 팔라티오)

흑지룡(타양섭 흑지룡)

일번 기사단 (타양섭 ONE)




원본 포스팅 : http://blog.naver.com/lukiagpx/140190215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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