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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기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양을 업데이트 하는 소설입니다. 퇴고도 대충 하고 올리는 경우가 많기에, 비문이나 오타 등에 대해선 감수를 하고 읽어주셔야 합니다. 퇴고가 완벽히 끝난 버전은 팬아트 게시판에 게시됩니다.
  • 이 소설은 RP TEAM [바람 발자국] 멤버들의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를 차용한 소설입니다. 아키에이지 연대기 원본에 없는 인물, 단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천개의 눈]은 2천년 전, 최초의 원정대가 매의 집에 거처를 두고 있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원정대가 등장하거나 관련 사건이 언급되진 않습니다.


- 천개의 눈 - 01


벨라트릭스의 걸음 소리가 복도 끝에서 메아리쳤다. 반짝반짝하게 닦인 대리석 바닥과 구두의 부딪침은 음산한 소리로 울렸고, 아무도 없는 복도의 한 가운데에서 공허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비밀스럽고 섬뜩한 이야기같던 그 소리는 이내 저녁 어스름처럼 잠잠히 사라졌다. 벨라트릭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상아빛 기둥은 조용했고, 투명한 유리창은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길게 이어진 대리석 바닥의 끝엔, 높고 거대한 하얀 벽만이 있을 뿐이었다.

벽의 한 가운데엔 알 수 없는 기이한 문양이 아무도 눈치채기 힘들만큼 작은 크기로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눈과 같은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는 허무할 정도로 텅 비어있는 듯한 눈동자가 위치해 있었다.



"사서님, 오늘은 정말 그 책이 필요해서 그래요. 어떻게 수소문 해볼 수 없을까요?"

동글 동글한 안경을 쓴 귀여운 소녀 한명이, 뒤이어 길게 서있는 줄에도 아랑곳 않고 큰 소리로 졸라대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런 소녀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소녀가 찾는 그 책이 벌써 5년째 도서관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도, 소녀가 앞으로 3일 뒤에 과제에 대한 발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두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소녀가 벌써 3일 넘게 그녀를 찾아와 난감한 상황을 만들고 있음에도 소녀를 원망할 순 없었다.
그녀는 소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가 사서로 일하기 시작한지는 아직 세달이 채 지나지 않았고, 소녀가 찾는 책을 빌려간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높으신 분"중 한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10년을 넘게 일한 베테랑 사서들조차 쉬이 반납 독촉을 하지 못하는 명문가의 자제였다.

"그 부분에 대해선 말씀드렸잖아요. 저한텐 권한이 없어요. 담당 사서분께 말씀드려보세요."

그녀는 침착한 목소리로 소녀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해보았다. 물론 소용 없는 일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제스쳐라도 취해주지 않고선 뒤에 길게 선 인파를 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녀의 대답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다.

"벨라트릭스 사서님이요? 그 분, 너무 깐깐하게 나오신단 말이에요. 무섭기도 하구. 어차피 해당 도서는 사서님도 함께 담당하는 서고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부탁드리는거에요."

벨라트릭스 사서. 도서관 내의 사서들 사이에서 차갑고 불친절한 업무 처리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녀의 성격은 뭐랄까, 애초에 이렇게 복작거리는 일반 서고에서 있을 만하지 않달까. 벨라트릭스 사서의 일처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일처리는 깔끔함과 세련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녀는 권위를 무기로 사람을 자비없이 내려 깔아버리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자신의 영역 밖이라 판단한 일에 대해선 더욱 그랬다. 예의있고, 깔끔하고, 세련된 말투로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윗 권위를 내세워 사람들의 건의를 자르고 묵살해 버렸다. 물론 자신이 해결 가능한 범위 내에선 놀랄 만큼 빠른 일처리를 보여주긴 했지만, 도서관 업무의 복잡함을 모르는 외부인들이 그 사실을 알 턱은 없었다. 그 전에 사서들부터가 그녀를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녀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에 대해 남는 평가라곤 차갑고, 불친절하고, 깐깐하다는 인상 뿐이었다. 지금 소녀에게도 벨라트릭스 사서에 대한 인상이 그러했던 모양이었다.

"쉬프렌 사서님, 듣고 계신건가요?"
"아, 네."

소녀가 카운터 위로 얼굴을 대뜸 들이대며 말을 건넸다. 벨라트릭스 사서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던 쉬프렌은 소녀의 이러한 행동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겉으론 그 사실을 최대한 숨긴 채 웃는 얼굴로 소녀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장에 대해 전달을 했다.

"음... 정말 안타깝긴 하지만, 제가 그쪽 서고 관리긴 해도 확실한 담당은 아니어서요. 그냥 벨라트릭스 사서님이 부재 중이실때 관리하는 정도에요. 이 부분에 대해선 저한테 권한이 없어요. 죄송해요."

소녀는 시무룩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쉬프렌이 소녀를 보면서 측은한 마음이라도 가지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로썬 이것 외의 어떠한 도움도 소녀에게 줄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는 모두 가감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칭얼거리던 소녀는 자신의 뒤쪽 줄이 한참 길게 뻗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리를 떴다. 델피나드 도서관 제 6서고의 서적들은 모두 담당 사서가 정해져 있어서, 이렇게 한 사람이라도 시간을 지체할 경우 하염없이 줄을 서서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쉬프렌은 그제야 숨겨두었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사람들은 기나긴 줄에서 굉장히 지치고 짜증난 상태였지만, 쉬프렌 사서에게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제 6서고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은, 델피나드에서 가장 복잡하고 가장 비합리적인 곳이었으니까.



연재물 목록

[천개의 눈 - 01] - 보러가기
[천개의 눈 - 02] - 보러가기
[천개의 눈 - 03] - 보러가기
[아니르의 무대] - 보러가기

  • 비나 @키프로사 | 36레벨 | 신성 노래꾼 | 하리하란
    소설 연성분들께는 추천을 드려야!!
    2013-12-1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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