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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잠깐만 도와주실 분 있나요? 」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무료하게 집안을 뛰어다니며 노닥거리고 있을 때,
조용했던 원정대 채팅창에 J님(가칭)이 도움을 청하는 메세지가 보였습니다.

「 한 분만 등짐지고 같이 앉아만 계시면 되는데 시간되시는분? 」

마침 할 일도 없었고, 자기전에 착한일 좀 해볼까 하고 생각한 저는
그분에게 도와드리겠다고 답했습니다.

얼마 후 J님과 저는 밭으로 5호를 타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신나게 드라이빙을 즐기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타격음이 들리더니, 차가 멈춰서고 그분은 운전대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알고보니 숨어있던 적 세력 플레이어가 저희를 기습했더군요.

J님은 습격에 익숙하신건지 금방 습격해온 플레이어를 누이로 보냈고
차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습격자는 계속해서 저희를 쫓아왔고, 한 명 두 명 인원이 늘어갔습니다.
저희는 급한대로 누이 여신상으로 차를 끌고 들어갔지만…….
J님이 잠시 습격이 멈춘 틈을 타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눈 앞에서 등짐 4개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저희끼리 다시 등짐을 되찾아보려 시도했지만 이미 상대방은 열 명 이상으로 불어나 있었고
J님과 저는 원정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 약탈 당했는데 도와주실 분 계신가요ㅠㅠ 」

메세지를 본 몇 명이 답을 하긴 했지만 다들 곤란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원정대 접속창을 확인해보니 대부분 파티를 맺고 무언가를 하고 있더군요.
향연의 뜰을 돌고 있거나 고대 인스턴스 던전 순회를 하고 있거나…….
당장 와줄 수 있는 사람은 두명 뿐이었습니다.

급한대로 그 두 분과 합류한 저희는 어떻게든 적들을 따라잡아 전투를 벌였지만
발목을 잡는게 고작이었고 그들은 결국 주거지역에 도착해 등짐을 내렸습니다.

「 괜찮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다음에 또 팔면 되죠 뭐.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ㅋㅋ 」

J님의 씁쓸해하는 채팅에 저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괜히 같이 도와준다고 왔다가 등짐만 잃어버리고……. 조금 더 강한 분과 왔으면
무사히 보호지역으로 가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쟁이나 PVP를 좋아하지도 않고 좋은 아이템에 욕심도 없어
맵을 돌아다니거나 요리를 만들거나 집을 꾸미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제가 약해서 짐을 빼앗긴 것이 아닌가 하고,
평소에 놀기만해서 제대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등짐은 이미 주거지역에 있는 적들의 밭에 놓여져 있었지만
저는 괜히 오기를 부렸습니다.

「 저거 팔러 나올때 다시 뺏으면 안되나요? 」

「 언제 팔러 나올지 알고요……. 」

「 이미 상황 종료라 어쩔 수 없어용 」

「 그러면 쟤네들이라도 좀 어떻게 할 순 없나요 」

「 쟤네들 지금 주거지역에서 안나올걸? 」

미안하고 조금 분한 마음에 고집을 부려봤지만 다른 분들은 거의 포기하신 듯 했습니다.
결국 저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돌아가려고 했죠.
좀 더 아이템도 맞추고 PVP도 조금 하면서 경험을 쌓자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


「 죄송해요 최대한 빨리 돌았는데 늦었어요ㅠㅠ 지금 어디세요? 」

다른 곳에서 게임을 즐기던 원정대원들이 하나 둘씩 돌아오면서 상황을 물어왔습니다.
적들과 싸우던 저희 4명을 빼고는 조용했던 원정대창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 이미 다 뺏겼어요? 일단 초대 주세요. 」

「 저도 초대 주세요~ 」

「 어디로 가야되요? 」

「 야 그냥 공대 짜ㅋㅋㅋ 」

「 지금 손드신 분들 다 디스코드 들어오세요! 」

5분도 안되는 동안 급작스럽게 공대가 만들어지고 모인 인원은 총 18명.
3팟 하고도 세 명이 다시 적 세력 플레이어들을 추격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등짐은 이미 주거지역으로 들어갔고 다시 찾을 수도 없는 상황…….
아쉬운대로 전쟁상태나 만들자 생각한 저희는 적들과 다시 마주쳤고

마침 적들의 등짐을 가득 실은 달구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빼앗긴 4개의 등짐은 숙성 등짐이었고 적들의 달구지에 실린 짐은 일반 등짐 이었지만
저희는 어떻게든 그 등짐을 빼앗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들이 왜 달구지를 끌고 나왔는지는 몰라도 이건 꼭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뭉쳐서 가요, 뭉쳐서 가요, 줄줄이 가지 말고! 」

「 누가 달구지좀 꺼내서 미리 누이에서 대기해라 」

「 경비병들앞에서 비빌거니까 반격하지 마세요 」

「 쟤네가 흘린 등짐 빨리 달구지에 넣으세요. 등짐지지 마세요. 」

「 어 쟤네들 달구지에서 내렸어요! 」

「 제가 F누르고 있어요, 각인 27초요 」

「 제발 다리 위에 힐 좀 주세요ㅠㅠ 」

마을 안에서는 소환된 달구지에 추가로 실려있는 등짐을 빼앗으려 실랑이가,
바로 앞에서는 양쪽 다 중립 경비병을 이용해 서로를 제거하려는 눈치싸움이,
다리 너머에서는 퇴로를 확보하려는 힘겨루기가 벌어져 순식간에 난전이 펼쳐졌습니다.

운전자가 몇 번인가 바뀌었지만 대부분 저희 원정대원들이 앉아
달구지를 조금씩 누이 여신상 방향으로 끌고갔고 짐을 모두 저희 달구지에 옮겨 싣는데 성공했습니다.
J님이 달구지를 운전하면서 조금씩 누이 여신상 지역에서 벗어나 언덕 아래로 내려가자
적들은 다시 덤벼왔고 저희는 그들을 달구지로 보내지 않기 위해 벽을 만들었습니다.

달구지에는 원딜들이 붙어 날틀을 타고 날아오는 적들을 견제했고
저희는 육상으로 덤벼오는 적들을 누이여신 주변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했습니다.
몇 명이 누이에서 나와 치고 빠지기도 했지만 공대장의 오더에 따라
집중적으로 공격해 누이 주변의 포위망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 야 우리 이제 간다. 」

몇 분 후 상대방의 대장이 포탈을 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후퇴했습니다.
저희는 기뻤지만 달구지가 완전히 보호지역에 진입할 때까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경계했고
달구지는 무사히 등짐과 함께 보호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숙성등짐 4개와 일반등짐8개(+a)를 맞바꾼 셈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이득을 더 봤다며
J님은 만족해했습니다.

공격대는 J님이 등짐을 모두 판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해체되었습니다.


*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이고 원정대는 한 번도 얼굴도 보지 못한 가상의 결속일 뿐이지만
가끔씩 그 가상의 결속이, 의리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희도 약탈을 하는 분들이 있고 쟁을 잘하시는 분, 돈이 많은 분, 강한 아이템을 가진 분들이 있지만
저에게 '원정대가 좋다'는 느낌을 주는 때는 언제나 원정대원들이 서로를 생각하고 도와줄 때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자신의 원정대가 좋다고 느껴졌던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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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판다 @곤 | 53레벨 | 밤 노래꾼 | 하리하란
    잘 봤습니다.
    2016-11-24 21:13
  • 련이 @곤 | 55레벨 | 장송곡 연주자 | 페레
    ㅋㅋㅋㅋㅋㅋㅋ아주 생생하게적었네 ㅋㅋㅋㅋㅋ잘썻어!ㅋㅋ
    2016-11-24 21:21
  • Suzie @곤 | 55레벨 | 감시원 | 페레
    잼나고 신비한 아키 세계!! 안나님과 함께라면~누이까지 ^^:
    2016-11-24 21:22
  • 블랑 @노아르타 | 55레벨 | 검은 기사 | 페레
    이야 글 올라온지 40분만에 조회수 18에 추천 19...
    신기하다..
    2016-11-24 21:35
  • 블랑 @노아르타 | 55레벨 | 검은 기사 | 페레
    역시 곤서버는 북적거리는듯 부럽..
    2016-11-24 21:35
  • 제이뷰 @곤 | 55레벨 | 검은 기사 | 하리하란
    저기..너무 감동적이고...너무잘봤어요!!!^^
    근데......왜...주...주인공이....제...제이죠!!!왜!!!와이!!!!!!도우시떼!!!!!!!!!!!!!!!!!!!!!!!!!!!!!!!!!!
    2016-11-24 21:39
  • 웁김 @안탈론 | 55레벨 | 은둔자 | 하리하란
    추천수가 수상하다.. ㅎㅎ
    2016-11-25 01:25
  • 비케이 @누이 | 51레벨 | 흑마법사 | 누이안
    아키는 함께 할 때 즐거운 게임이죠
    2016-11-25 10:30
  • 보검 @곤 | 55레벨 | 성직자 | 하리하란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2016-11-25 15:23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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