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토의 복수일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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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 [[영원의 섬 멸망의 진실]]
줄 82 줄 83
   
  h2. #12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소외당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특히, 손을 내민 사람이 많은 사람 사이에서 주역이라면 오죽하겠는가.
  파티의 주인공인 발티칸 왕자가 수많은 귀족 사이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에게 찾아와 관심 어린 모습을 보여줬을 때, 우리는 발티칸 왕자에게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h2. #13
  발티칸 왕자는 파티 내내 누이를 에스코트했다.
  주변에서 보기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부러움에 가득한 귀족 영애들의 시선을 받으며 열여덟의 어린 누이는 우쭐해질 수밖에 없었다.
  발티칸 왕자는 그런 누이를 파티가 있을 때마다 초대했다.
  결국, 발티칸 왕자는 어린 누이의 첫사랑이 되고 말았다.
  이 모든 상황이 영악한 발티칸 왕자에 의해 계획된 일이었지만, 순진하기만 했던 나와 누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h2. #14
  누이는 발티칸 왕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아버지는 어린 누이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깨고 결국 발티칸 왕자를 후원하게 됐다.
  아버지의 많은 재산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발티칸 왕자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발티칸 왕자는 아버지의 재산과 인맥을 이용해 세력을 형성해 나갔다.
  굴디곤 왕자와 아르카잔 왕자의 편에 줄을 서지 못한 사람과 많은 상인이 발티칸 왕자에게 모여들었다.
   
  h2. #15
  사고와 범죄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사고는 뜻하지 않게 발생한 일이며, 범죄는 고의적으로 계획된 일이다.
  모든 사람이 사고라고 생각했던 참사로 유력한 후계자 후보였던 굴디곤 왕자와 아르카잔 왕자가 한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발티칸 왕자 역시 그 자리에서 피륙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으며, 그와 함께 있던 내 누이는 두 왕자와 함께 누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누이는 그때 임신 중이었다.
   
  h2. #16
  세 왕자와 그들의 약혼자들이 많은 귀족과 함께 참여한 사냥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 무리가 난입해 테러를 저질렀다.
  그러면서 두 명의 왕자와 약혼자들이 모두 죽고 누이 역시 누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워낙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조사가 진행됐다.
   
  h2. #17
  조사 결과 범인은 이니스테르에서 잠입한 첩자였다.
  그런데 이 첩자는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 수많은 식객 중 한 명이었다.
  첩자로 지목된 자의 자백으로, 아버지가 모든 왕자와 일가족을 죽이고 임신한 누이의 자식을 왕좌에 올리기 위해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만인에게 존경받던 아버지가 순식간에 반역을 저지른 대역죄인이 돼버렸다.
   
  h2. #18
  집으로 왕실 병사들이 들이닥치기 직전에 아버지는 나를 탈출시켰다.
  탈출하는 순간 아버지는 내게 '아란제브의 명상'이라는 목걸이를 건네줬다.
  이니스테르에 사는 지인을 찾아가 그 목걸이를 증표로 보이라는 유언을 남긴 채 아버지는 탈출하지 않고 집에 남아서 순순히 오라를 받았다.자신까지 탈출하면 추격이 심해질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모두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h2. #19
  아버지는 많은 사람이 모인 광장에서 참수를 당했다.
  그동안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던 많은 사람이 참수당한 아버지의 시신에 침을 뱉었다.
  동정의 여론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평소 아버지의 성품을 칭송했던 사람들이 너무나도 손쉽게 돌변해 버렸다.
  아버지는 사람을 남기는 상인이 되겠다고 항상 말씀했지만 결국 사람을 남기지 못 했다.
   
  h2. #20
  발티칸 왕자는 아버지의 참수 후 알토라스 국왕에 의해 왕세자로 책봉됐다.
  왕세자 책봉과 동시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내 목에 천문학적인 금액의 현상금을 내건 것이다.
  내 탈출을 도운 사람이 나를 붙잡아 끌고 올 경우 죄를 용서하고 상금 역시 그대로 줄 거라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h2. #21
  삼엄한 경계를 뚫고 이니스테르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배가 항구에서 출발하는 순간 긴장감이 풀렸다.
  그때야 아버지와 누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몰려들었다.
  탈출을 도운 식객 요다와 함께 이니스테르로 떠나는 화물선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곤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몸은 두꺼운 밧줄에 꽁꽁 묶여 있었다.
  믿었던 요다가 현상금에 눈이 멀어 날 배신한 것이었다.
   
  h2. #22
  밧줄에 온몸이 꽁꽁 묶인 내 앞에는 발티칸 왕자가 있었다. 그는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처남. 장인어른 덕분에 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왕세자가 됐어. 그리고 이제 처남 덕분에 왕이 될 테고. 그러니 미리 고맙다는 말을 해둘게. 처남은 곧 알토라스 국왕 암살범으로 붙잡혀 현장에서 사살될 거야."
   
  발티칸 왕자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겪은 모든 불행의 원흉이 바로 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h2. #23
  사지를 결박당한 채 알토라스 국왕이 암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발티칸 왕자는 광기에 물든 얼굴로 내게 말했다.
   
  "처남, 이제 누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자네에게 내가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줄게. 사실, 자네 누이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었어. 천한 것이 임신했다며 감히 왕비가 될 꿈을 꾸길래 내가 벌을 준거야. 천한 피가 우리 영원한 섬의 왕족이 돼선 곤란하니까."
   
  h2. #24
  죽은 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임신한 사실을 알고 기뻐했던 누이의 미소를 떠올리자 눈자위의 실핏줄이 터지면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볼을 따라 흘러내린 피눈물이 턱 언저리를 지나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가 내 목에 걸어주셨던 목걸이인 '아란제브의 명상'에까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피눈물이 아란제브의 명상에 닿는 순간, 시각을 마비시키는 섬광이 목걸이에서 터져 나왔다.
   
  h2. #25
  아란제브의 명상은 나를 낯선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알고 보니 그 공간은 아란제브의 명상을 만든 어떤 마법사의 연구실이었다.
  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흘린 피눈물이 아란제브의 명상에 담겨있던 공간이동 마법을 발동시킨 것이었다.
  나는 죽은 누이가 내 목숨을 살려준 거로 생각하며, 우리 가족을 파멸로 이끈 발티칸 왕자에게 잔혹한 복수를 해주리라 다짐했다.
   
  h2. #26
  마법사의 거처에는 많은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특히 마법에 관한 책이 많았다.
  나는 마법에 관한 모든 책을 읽고 연구하며 독학으로 마법을 익혀나갔다.
  마법이 복수의 도구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하며.
   
  h2. #27
  무려 20년 동안이나 마법을 익혔다.
  마법사의 연구실에 있는 많은 책에 담긴 모든 마법을 익히고도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스스로 마법을 연구하며 힘을 기르다 보니 어느새 20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사실 중간에 연구실 밖으로 나가 복수를 감행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발티칸 왕자의 자식들이 장성했을 때 그들을 하나하나 죽여서 그를 고통받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부러 시간을 보냈다.
   
  h2. #28
  스스로 복수의 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되는 순간, 나는 마법으로 얼굴과 목소리를 바꾼 후 영원의 섬으로 돌아갔다.
  20년 만에 돌아가는 고향이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가족이 없는 영원의 섬은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한때 이웃이었던 사람들과 아버지의 식객이었던 사람들 모두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는 가족뿐만 아니라 고향까지도 잃어버렸단 사실을 깨달았다.
   
  h2. #29
  발티칸 왕자는 발티칸 국왕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아홉 명의 부인과 열다섯 명의 자식이 있었다.
  나는 발티칸 왕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하나씩 잔인하게 죽여서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 계획을 세웠다.
   
  h2. #30
  발티칸 국왕에게 찾아가 임관을 요청했다.
  고위 마법사가 찾아와 스스로 임관을 청하자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왕실 마법사로 임명했다.
  목소리와 얼굴을 모두 바꾼 탓에 내 진실한 정체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마법들을 보여서 신임을 얻었다.
  삼 년 동안 조용히 시키는 일을 척척 해낸 끝에 마침내 나는 왕실 수석마법사가 됐다.
   
  h2. #31
  사람의 무의식은 추악하다.
  수많은 욕망이 무의식에서 꿈틀거린다.
  하지만 사람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통제하며, 욕망을 감춘다.
  예의범절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본심은 무의식 속에 꽁공 숨겨두는 법이다.
  진실의 거울이라는 마법이 있다.
  참선을 통해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무의식을 통제 없이 외부로 표출시키는 마법이다.
  이 마법은 수도자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수련을 위해 사용하는 마법이다.
  나는 이 마법을 발티칸 국왕의 자녀들에게 몰래 걸었다.
   
  h2. #32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무의식과 직접 대면했을 때 큰 괴로움을 느낀다.
  이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이겨낸 사람은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거나 미쳐버리고 만다.
  그 때문에 진실의 거울에 걸린 사람 대부분은 괴로움을 이겨내지 못해 자살하거나 미쳐버린다.
  진실의 거울에 걸린 발티칸 국왕의 자녀들 역시 똑같았다.
   
  h2. #33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추악한 자신의 무의식에 놀란 왕자와 공주들은 모두 당혹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모두 왕궁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힌 채 사람들과의 대면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발티칸 국왕이 왕좌에 오르기까지의 추악한 행적을 적은 책을 써서 몰래 전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과연 왕자와 공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흥미진진했다.
   
  h2. #34
  자신의 아버지가 음모로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마저 암살한 후, 왕좌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자와 공주 중 다섯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채 자살했다.
  자살한 왕자 사이에는 왕세자인 부르칸 왕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집단자살에 놀란 발티칸 국왕은 진상조사를 명령했다.
   
  h2. #35
  자신의 추악한 과거가 담긴 책이 왕자와 공주를 괴롭게 만들며 자살에 이르게 했단 사실을 알게 된 발티칸 국왕은 뻔뻔하게도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기보다는, 진실이 담긴 책을 쓴 저자인 나를 잡으라는 명령을 전국에 내렸다.
  20년 전의 내 모습이 담긴 현상수배지가 영원의 섬 곳곳에 퍼져 나갔다.
   
  h2. #36
  왕자와 공주에게 보여줬던 책을 몰래 일반 백성에게도 유통하였다.
  20년 전에 국왕 암살범으로 지목돼 참수된 것으로 알려진 내가 갑작스럽게 지명수배자가 된 것을 의아하게 여겼던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끼며 진실이 담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진실이 사람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다.
   
  h2. #37
  왕자와 공주 그리고 백성들이 모두 발티칸 국왕의 부도덕함을 욕하며 손가락질한다면, 아무리 뻔뻔한 발티칸 국왕이라도 괴로워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벌인 일이었다.
  그런데 예상외의 반응들이 나타났다.
  발티칸 국왕이 지난 20년 동안 제법 백성들을 잘 다스렸던 탓인지 발티칸 국왕의 부도덕함에 대한 비난의 수위가 예상외로 낮았다.
  대부분은 비록 과거에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지금은 백성을 아끼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으니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h2. #38
  이럴 수가!
  아버지를 칭송했던 그 많은 사람이 발티칸 국왕의 추악한 진실과 우리 일가의 비참한 죽음의 내막을 알고서도 발티칸 국왕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아버지가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악덕 거상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죽인 것 역시 백성들을 위한 일이었다며 입을 놀렸다.
   
  h2. #39
  오히려 막내 왕자인 페데가 발티칸 국왕에게 찾아가 책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이미 누이 여신의 곁으로 떠난 우리 가족에게 사죄하고 나에 대한 지명수배도 풀어야 한다고 간청했다.
  믿었던 영원의 섬 사람들은 모두 우리 가족을 배신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원수의 자식인 페데 왕자가 우리 가족의 비참한 운명을 동정하며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h2. #40
  비록, 백성들로 하여금 발티칸 국왕을 손가락질하게 하는 일은 실패했지만, 진실의 거울을 사용한 효과는 대성공을 거뒀다.
  페데 왕자를 제외한 모든 왕자와 공주가 광기에 젖어들었다.
  그들은 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가 그들의 눈동자를 통해 그대로 표출되고 있었다.
   
  h2. #41
  광기에 젖은 왕자와 공주에게 찾아가 왕세자였던 부르칸 왕자가 자살했기 때문에 왕세자의 자리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왕세자의 자리에만 오른다면 왕이 될 수 있다고 귀띔해주자 광기에 물든 왕자와 공주는 자신이 왕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기 시작했다.
   
  h2. #42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부모와 형제를 모두 죽였던 발티칸 국왕은 왕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자식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만약 그가 자식들에게 부정을 느낀다면 서로 싸우는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며 괴로움을 느낄 테고,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자식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불안함을 느낄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그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h2. #43
  수많은 귀족과 상인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왕자와 공주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세력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왕세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귀족과 상인들의 세력 싸움으로 번지면서 순식간에 나라가 내전 상태에 빠져버렸다.
  수많은 사람이 왕자들의 전쟁에 휩쓸려 누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죽은 이들 중에는 아버지를 욕한 자들도 있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h2. #44
  왕세자 자리를 노리는 왕자와 공주의 싸움은 점점 치열하게 변해갔다
  처음에는 피를 보지 않고 상대 세력을 누르기 위해 노력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으면서 사고를 위장한 암살과 독살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하던 발티칸 국왕은 어느 날 갑자기 군대를 동원해 다툼을 벌이던 왕자와 공주를 모조리 잡아들였다.
   
  h2. #45
  발티칸 국왕은 왕자와 공주가 왕세자 자리를 노리며 무분별하게 분쟁을 일삼아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며, 그들의 직위를 모조리 해제해버렸다.
  왕자와 공주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던 세력들은 발티칸 국왕의 결정에 반발하며 반란을 획책했다.
  발티칸 국왕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것처럼 그의 자식들도 부모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하려 드는 것이다.
   
  h2. #46
  발티칸 국왕의 자식들이 반란을 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고민했다.
  왕자와 공주가 반란을 일으켜 발티칸 국왕을 암살하게 하는 게 제대로 된 복수인지 아니면, 발티칸 국왕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신의 자식을 모조리 참수하는 것이 더 통쾌한 복수인지 고민됐기 때문이다.
   
  h2. #47
  부모가 자식을 죽이든, 자식이 부모를 죽이든, 모두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 행위일 뿐이다.
  나는 복수를 위해 발티칸 국왕과 그의 자식들로 하여금 패륜을 일삼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게 과연 정당한 행위일까?
  문득, 스스로 자신이 마귀가 돼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발티칸 국왕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을 생각했다.
  나는 복수를 위해 사람이길 포기했다.
   
  h2. #48
  발티칸 국왕으로 하여금 자신의 자식들을 스스로 죽이게 하는 것이 더 통쾌한 복수라는 판단을 내렸다.
  나는 발티칸 국왕에게 그의 자식들이 지지세력과 함께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분노한 발티칸 국왕은 광기에 물든 눈으로 울부짖더니 나를 앞장세워 반란을 일으키려는 왕자와 공주를 모조리 잡아들였다.
   
  h2. #49
  반란을 준비 중이던 왕자와 공주를 기습적으로 잡아들인 발티칸 국왕은 고민에 빠졌다.
  비록 반란을 일으키려 했지만, 자신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어떤 처분을 내려야 할지 괴로워하며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에게 막내인 페데 왕자가 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페데 왕자가 국왕이 됐을 때 반란을 일으켰던 형제가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h2. #50
  왕세자의 자리를 놓고 벌인 왕자들의 분쟁에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은 페데 왕자를 발티칸 국왕은 매우 아꼈다.
  발티칸 국왕은 괴로운 얼굴로 한동안 고민하더니 결국 페데 왕자를 위해 반란 혐의로 잡아들인 왕자와 공주를 모조리 참수시켰다.
  부모가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모조리 죽여버린 것이다.
   
  h2. #51
  발티칸 국왕이 반란 혐의로 왕자와 공주를 모두 참수시킬 때 그것을 말린 사람은 오직 막내인 페데 왕자 하나뿐이었다.
  발티칸 국왕은 왕자와 공주의 참수를 반대하는 페데 왕자를 더욱 기특하게 생각하며, 참수를 단행했다.
  반란 혐의로 아홉 명의 왕자와 공주가 참수당하고, 그를 따르던 무리 팔백 명이 함께 참수를 당했다.
  내 복수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h2. #52
  왕자를 모두 참수하자 발티칸 국왕의 부인들은 모두 발티칸 국왕을 욕하고 원망하며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대소신료를 비롯한 왕실의 시종들은 자식을 참수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광기에 젖어버린 발티칸 국왕을 두려워했다.
  모두 발티칸 국왕과 시선이 마주치길 꺼렸다.
  오직 나와 페데 왕자만이 발티칸 국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외톨이가 돼버린 발티칸 국왕은 점점 나를 의지하기 시작했다.
   
  h2. #53
  발티칸 국왕은 페데 왕자를 왕세자로 책봉하고 나를 왕세자의 스승으로 임명했다.
  그는 어리석게도 주변에 있는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가장 신임하고 있었다.
  페데 왕자 역시 나를 스승으로 공경하며 배움을 청했다.
  영원의 섬에서 나는 국왕 다음으로 강한 힘을 지닌 권력자로 부상했다.
  복수를 즐기는 권력자가 됐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속에 빈자리가 점점 커지는 느낌만 들었다.
   
  h2. #54
  진실의 거울을 극복해낸 페데 왕세자는 깨달음을 얻은 수도자처럼 맑고 투명했다.
  그는 항상 겸손했으며, 자신을 내세우기 전에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나는 그런 페데 왕세자가 못마땅했다.
  페데 왕세자가 나를 스승으로 공경하며 따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저 녀석은 원수의 아들일 뿐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증오심을 키워보려 했지만, 미움이 생기지 않았다.
   
  h2. #55
  페데 왕세자가 발티칸 국왕의 뒤를 이어 영원의 섬에 왕이 된다면, 그는 정말 성군이 될 게 분명했다.
  태평성대가 찾아오면서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 원수다.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누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간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지 않는 영원의 섬 사람들 모두 내겐 원망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복수에 괴로움을 느껴야만 했다.
  나는 아직도 마귀보단 사람에 가까운 상태인가 보다.
   
  h2. #56
  사실 내가 계획한 복수의 마지막은 영원의 섬 자체를 아예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발티칸 국왕이 바다를 다스리는 다후타 여신을 모독하게 해 신벌을 받게 하는 것이 복수 계획의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최종 계획을 실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영원의 섬 전체가 아닌, 발티칸 국왕만을 죽여도 복수를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h2. #57
  최종적인 복수 계획의 실현을 한참 망설이고 있을 때, 엉뚱한 사건이 발생했다
  페데 왕세자가 어느 날 해안가에서 수면에 언뜻 비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페데 왕세자는 '아란제브'라는 속삭임을 들었다고 한다.
  페데 왕세자는 우연히 아름다운 다후타 여신의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져버린 듯했다.
   
  h2. #58
  여신의 미모에 반해 상사병에 걸린 페데 왕세자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영원의 섬에서 유명한 의사와 신관이 모두 모여서 그를 치료하려 했지만, 왕세자의 증상은 점점 악화하여 갔다
  나는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 있는 페데 왕세자와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발티칸 국왕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 복수가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h2. #59
  발티칸 국왕이 왕실 제일의 마법사인 내게 페데 왕세자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물었을 때 나는 대답했다.
   
  "바다의 저주가 왕세자 저하께 내려졌습니다. 국왕 폐하께서는 왕세자 저하를 병들게 한 바다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바닷속에 사는 인어와 물고기, 고래 따위를 모조리 죽여서 피바다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 피바다 앞에서 북쪽 바다의 지배자인 국왕 폐하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외치십시오."
   
  h2. #60
  나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었던 발티칸 국왕은 왕국의 모든 병사와 백성까지 동원해서 바다의 인어를 죽이고 물고기와 고래를 사냥했다.
  커다란 고래와 인어 등의 바다 생물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푸른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붉은 낙조가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때, 발티칸 국왕은 피바다를 마주한 절벽 위에서 외쳤다.
   
  "나는 북쪽 바다의 지배자인 발티칸 국왕이다! 나를 업신여기지 말고 썩 물러나라!"
   
  h2. #61
  발티칸 국왕의 외침이 끝나자, 수많은 바닷속 동물이 흘린 피로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게 물든 바닷속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교만한 자. 너희의 모든 역사를 물속에 묻고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게 하리라."
   
  h2. #62
  바닷속에서 들려온 노랫소리에 놀란 발티칸 국왕은 내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바다의 여신이 발티칸 국왕을 북쪽 바다의 지배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며, 발티칸 국왕의 힘을 과시해야만 한다고 답했다.
  그는 내 조언에 따라 영원의 섬 곳곳에 있는 다후타 여신의 신전을 모두 파괴하고 다후타 여신을 모시는 신관들을 모조리 섬 밖으로 쫓아냈다.
   
  h2. #63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신성모독의 대가로 다후타 여신은 영원의 섬을 물 속에 묻고 기억에서 잊혀지게 만들 것이다.
  날카로운 검이나 무시무시한 마법이 아닌, 간사한 혀 하나로 나는 발티칸 국왕이 스스로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져들도록 하였다.
  이제 복수의 마지막 장만이 남았다.
  과연 발티칸 국왕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h2. #64
  지금까지도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폭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파도가 해안가로 몰아쳤으며, 풍랑 속에서 수천수만 개의 검은 그림자가 뭍을 향해 기어 올라와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발티칸 국왕의 명령에 따라 바닷가가 수많은 바다 생물의 피로 붉게 물들었던 것처럼, 검은 그림자가 죽은 사람들의 피로 영원의 섬이 붉게 물들어 갔다.
   
  h2. #65
  예상치 못한 사태에 놀란 발티칸 국왕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걸었던 마법을 풀었다.
  내 본래의 얼굴과 목소리가 돌아왔다.
  나는 무려 이십오 년 만에 발티칸 국왕을 다른 칭호로 불렀다.
   
  "매형! 오랜만이에요."
   
  h2. #66
  발티칸 국왕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너... 너! 너! 너는 알렉토!"
   
  발티칸 국왕의 눈자위의 실핏줄이 터져나가기 시작하더니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발티칸 국왕에게 다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남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하면 결국 언젠가는 그 피눈물을 자신도 흘리게 되는 법입니다. 매형!"
   
  h2. #67
  피눈물을 흘리던 발티칸 국왕은 분노를 참지 못해 졸도하고 말았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죽인 자식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손으로 죽인 내 누이와 아버지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를 실현했다.
  발티칸 국왕이 지닌 모든 것을 파괴하고 고통과 절망감을 안겨줬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복수를 완수한 것이다.
  그런데 전혀 기쁘지가 않다.
  사무치도록 가족이 그리울 뿐이다.
   
  h2. #68
  거대한 해일이 몰아치면서 영원의 섬이 물에 잠기고 있다.
  많은 사람의 고통에 찬 비명이 폭풍우 소리와 함께 메아리치고 있다.
  영원의 섬은 지옥으로 변해있었다.
  이것은 결국 내 복수의 결과다.
  사실 지금이라도 당장 나는 마법 포탈을 만들어 영원의 섬을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이제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까...
  '복수를 위해 살아온 인생... 허망하다... 이제 곧 아버지와 누이 곁으로 갈 수 있겠지...'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h2. #69
  최후의 순간, 권력자의 욕심이 복수와 파멸을 부르는 이런 끔찍한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불행한 사람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동안 써왔던 일지를 마법으로 영원의 섬 곳곳에 흩어지게 할 것이다.
  아주 먼 훗날 누군가가 나 알렉토의 복수일지를 발견한다면, 어리석은 욕망과 욕심이 어떻게 파멸을 불러오게 되는가를 배우고 이런 끔찍한 비극이 다시 역사에서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널리 알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