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명인 등급부터 특정 접두사가 붙은 장비 이외의 장비는 업그레이드조차 할 수 없는 구도가 불만입니다.

확률상 너무 극악한 것 아닌가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고레벨 컨텐츠에서 극악한 확률놀음/노가다를 요하는 게 아키에이지만의 특징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아키에이지란 MMO가 자랑스레 내세우는 요소 중 하나가 다양한 직업조합입니다. 순수한 물리공격/마법공격 조합, 세부적으로는 순수한 근접물리공격/원거리물리공격/마법공격형 캐릭터는 물론이고, 근거리물리+마법, 원거리물리+마법, 근거리물리+원거리물리 등의 복합형 캐릭터도 얼마든지 생성가능하다는 말이지요.

근데 앞서 언급한, 극도로 제한된 제작아이템의 업그레이드 가능성 때문에 특정 직업의 캐릭터들이 태생적/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순수 근거리 물공 클래스나 마공+근거리 물공 복합 클래스의 경우, 명인급 이상의 등급에서 '지진' 접두사 판금방어구를 뽑게 되면 도박에 성공한 게 됩니다. 이 클래스들은 다음 등급으로 제작템 업그레이드를 시도하기까지 해당 '지진' 접두사 방어구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본인에게 필요한 옵션이 달려 있는 방어구니까요. 이것도 바늘구멍으로 낙타 통과시키는 격의 확률을 뚫어야 하는지라 이걸 두고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장점이라도 되듯 언급하는 게 글을 끄적이는 입장에서도 거시기합니다만.

반면 원거리물리공격과 탱커적 특성이 결합된 클래스 등 효율상 판금방어구를 장착하는 게 일례가 된 특정 복합형 클래스들의 경우, 명인등급 제작템부터는 딜레마 앞에 놓이게 됩니다. '지진' 접두사 판금방어구를 뽑게 되면? 보다 상위등급으로의 업그레이드는 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당장 써먹지는 못합니다. '지진' 접두사 판금방어구에 달려 있는 스탯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주옵션과는 전혀 무관한 옵션들이거나, 일부는 주옵션이나 여타는 잉여옵션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들의 주옵션이 달린 접두사의 판금방어구를 뽑게 되면? 당장 요긴하게 써먹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상위등급으로의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합니다.

업그레이드 가능한 판금방어구계의 접두사 '지진', 가죽방어구계의 접두사 '태풍', 천방어구계의 접두사 '바다'.

'지진', '태풍', '바다' 접두사에 따라 부가되는 스탯들이 자신의 주옵션인 클래스에게 있어서 '업그레이드 가능한 명인등급 아이템' = '당장 써먹을 수도 있는 아이템'이란 등식이 성립합니다. 반면 그게 아닌 클래스들은 업그레이드 가능한 명인등급 아이템이 뽑히면, 당장 써먹을 수는 없으니 해당 레벨대에는 몬스터 드랍아이템을 사용하면서 버티거나, 자신이 원하는 스탯이 달린 명인등급 아이템과 차후 업그레이드할 명인등급 아이템을 이중으로 구비해두거나, 스탯면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그 아이템을 그냥 사용하거나. 어찌 됐든 별도의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

몬스터 드랍아이템의 성능도 충분히 좋기 때문에 제가 언급한 점이 실질적으로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느냐 싶으신 분들도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애시당초 특정유저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더 좁게 주어진다는 사항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업글 가능 접두사 방어구만으로도 계속 재미를 볼 수 있는 클래스가 존재하는데, 같은 시각 어떤 클래스들은 굳이 특정구간에서 업글 가능 접두사 방어구 이외의 수단을 반강제적으로 강요받게 된다는 겁니다. 단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요.

방어구만 따져봐도 이렇습니다. 무기, 악세 쪽도 상황은 매한가지입니다.

솔직히 모든 장인등급 아이템을 명인등급으로, 모든 명인등급 아이템을 대가등급 아이템으로 업그레이드 되게끔 하더라도 원하는 접두사의 아이템을 뽑기란 아주 힘든 일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MMORPG를 통틀어 봐도 손에 꼽을 만큼요. 그런 마당에 특정 직업들이 선택의 자유 면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방향으로의 수정이 가해진다고 하여, 개발진분들이 우려할 정도로 '입맛에 맞는 아이템 풀셋 맞추기'가 쉬워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직업들간 효율성 면에서 차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라 소위 망캐가 있고 귀족캐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모든 직업이 게임상 컨텐츠들을 선택하고 누릴 자유만큼은 동등하게 부여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